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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5개월전 판교 참사 벌써 잊었나…명동역 환풍구 `이미 붕괴중`

◆ 우리 마음속 10敵 / ① 부실한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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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9번 출구와 10번 출구 사이 4-99번 환풍구. 환풍구 안전점검을 나선 취재진의 눈에 격자무늬로 연결된 철제 덮개(그레이팅) 연결부 중 일부가 끊어져 있는 것이 목격됐다(사진). 끊어지면서 생긴 틈은 1㎝도 되지 않았지만 동행했던 전문가들 얼굴은 사색이 됐다. 안양환 한국건설관리공사 기획실장은 "덮개 철판을 격자무늬로 연결한 것은 하중을 분산하기 위한 것인데 파손이 생기면 그쪽으로 하중이 집중된다"며 "이미 붕괴가 시작된 것"이라는 충격적 진단을 내놨다.

서울시 기준에 따르면 보도에 자리한 환풍구는 ㎡당 500㎏의 하중을 버텨야 하는데 이 환풍구는 그 절반도 못 버틴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였다.

이곳은 덮개 일부가 끊어졌을 뿐 아니라 덮개가 다른 곳처럼 수직으로 서 있지 않고 비스듬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덮개는 빗물이 들이치는 걸 막기 위한 벽면용 제품이다.

최호태 한국건설관리공사 기술연구소 팀장은 "하중을 견디기 위한 바닥용으로는 부적합한 제품을 임의 시공했다"며 "강도는 바닥용 규격품의 절반 이하일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 주체인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이 환풍구는 모터로 바람을 뽑아서 배출하는 강제배기식 환풍구다. 수직으로 바람이 올라오면 보행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어 바람을 차도 쪽으로 배출하려고 비스듬한 형태의 덮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민들은 수시로 환풍구 위를 지나다녔고 그때마다 환풍구는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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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5개월 전 일이다. 2014년 10월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의 환풍구가 붕괴되면서 환풍구 위에 올라서 있던 27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이 사고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환풍구 안전실태를 점검했고 "더 이상 환풍구 붕괴 사고는 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직접 확인한 지하철 환풍구는 여전히 위험했다. 덮개가 파손된 환풍구는 하루 유동인구 200만명이 넘는 명동 중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호텔 밀집 지역에 있다.

이처럼 환풍구가 파손된 채 방치되고 있지만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덮개가 기울어졌지만 내구성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해당 환풍구는 올해 보수계획에 포함돼 있다"는 안일한 답변만 내놨다. 서울시는 2014년 판교 사고 이후 지하철 환풍구 2809개소에 대한 안전점검을 진행했고 이 중 706개가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서울시 내부조사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으로 보수가 필요한 지하철 환풍구 706개 중 441개에 대한 보완을 완료했고 나머지 265개는 보수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265개는 '경미한' 보수가 필요한 것들로 분류됐다. 이미 붕괴되고 있는 환풍구를 경미한 보수 대상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으로 요란하지만, 그때뿐이다. 과거 기억은 희미해지고 안전에 대한 '건망증'은 국민을 다시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특별취재팀 = 이은아 부장(팀장) / 홍장원 기자 / 안정훈 기자 / 홍성윤 기자 / 정순우 기자 / 배미정 기자 / 백상경 기자 / 연규욱 기자 / 홍성용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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