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를 인하할 때마다 국내 제약사가 떠안는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가파른 약가 인하 조치 때문에 일동제약과 태준제약이 변비 치료제 생산을 중단한 가운데 락툴로오스 농축액을 기반으로 한 변비 치료제 시장에서 80%를 점유하고 있는 1위 업체 JW중외제약도 생산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JW중외제약이 밝힌 락툴로오스 농축액을 이용한 변비 치료제 '듀파락' 생산원가는 1㎖당 15원에 달한다. 원가 기준으로 듀파락을 생산하면 약가 대비 1㎖당 6원의 손해를 보는 구조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제약사 두 곳이 변비약 생산을 중단한 이후 치료제 수요가 듀파락으로 대거 몰리면서 변비약 수급 불안이 가중됐다"며 "낮은 약가에도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지만 품절 사태에 따른 항의가 많은 데다 원가 부담도 너무 커 듀파락을 계속 생산할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JW중외제약은 약가 인하가 결정될 때마다 약가 조정 신청이나 원가 보전을 위한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신청을 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
유한양행이 생산하던 시기 1앰풀당 상한 가격은 760원에 불과했다. 과도하게 약가를 낮춰 생산이 중단됐기 때문에 카나마이신 주사제 가격이 4배 가까이 급등했고 이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소아암 환자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에 사용되는 주사제 '치오테파' 수입이 중단됐다. 치오테파 약가는 1바이알당 4만4009원이었지만 미국 제조사가 가격을 8배나 올리는 바람에 국내 약가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수입사였던 인솔은 24만원으로 약가 조정을 신청했지만 건강보험공단이 18만원을 상한으로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고 결국 인솔이 수입을 포기하면서 환자들이 알아서 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현재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수입되는 원가는 치오테파 1바이알당 25만7012원이다. 원가를 과도하게 내렸다가 환자 불편만 키우고 더 비싼 비용을 내고 필요 의약품을 사야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제약업계는 "무턱대고 가격을 깎으면 공급에 차질이 생겨 결국 피해가 환자들에게 돌아가며 제약사들의 신약 연구·개발(R&D) 의지를 꺾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정부는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원가 보전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30조6000억원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가 재정 확보를 위해 의약품 약가 인하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여 제약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혜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