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바가지 상술에 멍드는 부모들

송진식 기자
경기도 용인시의 한 완구점 앞에 인기 장난감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 이충진 기자

경기도 용인시의 한 완구점 앞에 인기 장난감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 이충진 기자

·오픈마켓 판매자들 ‘가격 장난’ 심각… 제멋대로 판매가 변경, 사재기로 바가지도
ㄱ씨는 최근 아이 선물로 인터넷 쇼핑몰인 11번가에서 ‘코코밍’ 장난감을 주문했다가 낭패를 봤다. 코코밍은 현재 어린이 채널 등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인 <에그엔젤 코코밍>의 주인공들을 실물 크기로 만든 캐릭터 장난감이다. 인기가 높은 탓에 대형마트나 제조업체의 공식 판매점에서도 물건을 구하기가 힘들다.

ㄱ씨는 11번가의 한 판매자가 마침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여러 캐릭터를 한꺼번에 파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에 서둘러 결제를 했다. 하지만 판매자는 주문한 지 사흘이 넘도록 아무 사유도 밝히지 않고 물품을 발송하지 않았다. 발송 여부나 취소 문제를 문의하려고 판매자 정보에 기재된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착신 불가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이 업체는 심지어 11번가가 선정한 ‘판매우수’ 업체이기도 했다. 황당한 건 이 판매자가 재고가 없다면서도 값을 대폭 올려 계속 장난감을 판매했다는 점이다. 결국 ㄱ씨는 아이 생일날 주문했던 선물을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집에 들어갔다. ㄱ씨는 “장난감 인기가 높자 값을 더 올려 팔기 위해 고의로 물품 배송을 안한 것 아니냐”며 억울해했다.

장난감은 ‘정가’가 없는 대표적인 소비재다. 하다못해 생필품도 아닌 까닭에 제조업체들이 일부 표시하는 ‘권장소비자가격’에 포함될 물품도 아니다. 이 때문에 장난감값은 판매하는 사람 마음대로 정해진다. 그만큼 유통과정에서 가격이 왜곡될 위험도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같은 장난감이라도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과 같은 선물 시즌에는 가격이 폭등하는 사례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지만 장난감만큼 가격장난이 심한 물품도 찾아보기 어렵다. 선물을 바라는 아이의 간절함을 채워주기 위해 부모들은 그 값이 ‘바가지’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를 교묘히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판매업자들의 상술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보고 있다.

■물품 발송 더 높은 가격에 산 소비자부터

피해는 주로 판매자들이 손쉽게 가격을 변경할 수 있는 오픈마켓에서 일어난다. ㄱ씨가 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판매자는 물품 재고가 있든 없든 일단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결제하도록 만든다. 오픈마켓에서는 주문량이 실시간으로 확인되므로 판매자는 주문량이 갑자기 오른다 싶으면 물품값을 확 올린다. 그리고 실제 물품 발송은 더 높은 가격에 산 소비자부터 시작된다. ㄱ씨가 피해를 본 11번가의 판매자만 해도 사흘 새 해당 제품 가격을 ‘8900원-1만500원-9600원-1만3000원-1만1830원-1만3000원’ 등으로 수차례 바꿨다. 코코밍 제조업체인 반다이남코코리아가 공식 쇼핑몰을 통해 판매 중인 가격이 8900원인 데 비해 최대 1.5배까지 값을 올린 셈이다. 가격이 중간에 떨어진 건 이른바 ‘최저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일단 가격을 내린 경우로 추정된다.

싼 가격에 구매를 한 소비자에게는 재고 등을 이유로 물품 배송을 차일피일 미룬다. 오픈마켓 대부분이 재고 소진 시 판매가 중단되도록 시스템을 갖춰놓은 점을 감안하면 핑계에 불과하다. 한 판매자는 “어차피 급한 건 판매자가 아니라 소비자”라며 “하루이틀만 발송을 늦춰도 소비자가 알아서 구매를 취소해 판매자가 손해볼 일은 없다”고 밝혔다. 전자상거래법상 허위 가격이나 물품으로 선결제를 유도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지만 비교적 소액인 장난감값을 놓고 이를 실제로 문제삼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픈마켓 측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판매자 개인의 가격정책에 대해서는 관여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11번가 관계자는 “장난감의 경우 특히 재고문제로 소비자 불만접수가 많아 판매자들에게 누차 주의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면서도 “가격 설정은 전적으로 판매자 권한이라 판매중개업자인 오픈마켓 측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불량 판매자에게는 오픈마켓 측이 처벌을 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솜방망이 수준이다. 11번가의 경우 사안의 경중에 따라 ‘경고-징계-판매자 퇴출’ 등의 절차가 있지만 실제 퇴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사기판매 등 법적으로 명백하게 문제가 된 사례에 국한된다. 단순 경고나 벌점 부과의 경우 판매자가 물품을 판매하는 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처벌효과가 없다고 보면 된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판매자와 오픈마켓은 어디까지나 공생관계”라며 “특히 우량 판매자의 경우 판매에 지장이 생기면 곧바로 오픈마켓 수익에도 지장이 있는데 제대로 된 처벌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판매업자들이 물량을 풀지 않다가 시점에 따라 가격을 대폭 올려 판매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인기 애니메이션인 <터닝메카드>의 경우 최근 새 시리즈를 방영하면서 일부 완구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주인공격인 ‘에반(블루 색상)’의 경우 제조사인 손오공 측은 “최초 판매를 시작한 당시와 같은 1만6800원에 현재도 판매 중”이라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제조사 주장과는 달리 에반 블루 색상은 현재 3만원대 중반 가격대부터 구할 수 있고, 이마저도 품절된 경우가 많다. 아직 재고가 있는 판매자의 경우 4만원 넘게 가격을 책정해놓기도 했다.

손오공 관계자는 “판매자들이 마진을 높이기 위해 인기를 얻은 제품의 경우 가격을 높여서 팔고, 인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마진을 줄이면서 저렴하게 팔고 있다”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제조사가 판매자 개별 가격에 개입할 수 없는 탓에 완구업체들도 역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불량 판매자 처벌 받지만 솜방망이 수준

선물 시즌에는 ‘사재기’를 통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많다. 특히 완구업체가 재고처리나 시장 확대 등을 목적으로 평소의 절반 가격에 마트에서 한정 할인행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행사가 판매자들의 주요 먹잇감이다. 한 완구업체 관계자는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시즌 등에는 개인 판매자들이 마트 특판행사에서 사들인 완구를 오픈마켓에서 높은 가격에 파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고 밝혔다. 인기 장난감의 경우 특판이 아니라도 일단 사들인 뒤 다시 웃돈을 받고 오픈마켓에서 팔기도 한다. 대형마트의 경우 바가지 논란을 우려해 인기 장난감이라 해도 가격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인기 장난감이 번번이 ‘품절상태’가 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대형마트들은 이를 막기 위해 인기 장난감에 한해 판매수량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사재기 자체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판매조건을 내거는 문제도 심각하다. 오픈마켓들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업체별로 정해진 규격과 양식을 통해 판매나 배송, 환불 등에 대한 세부사항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판매자들이 의무 기재란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내용들을 적어내 오픈마켓 내부 판매자 규정을 회피한 뒤 자체적으로 또 다른 판매조건을 내거는 경우다. 무조건 ‘반품이나 환불은 불가하다’거나 소비자에게 사전 안내 없이 ‘제품의 색상이나 내용물, 양식 등이 바뀔 수 있다’는 내용 등이다.

오픈마켓과는 협의가 되지 않은 불합리한 약관을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셈인데, 내용 자체에 문제도 많을뿐더러 소비자들 상당수는 제품 구매에 열중한 나머지 이런 추가사항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ㄱ씨만 해도 구매를 완료한 이튿날에 해당 판매자로부터 ‘제품이 발송됐다’는 안내문자와 함께 택배 송장번호까지 받았다. 하지만 물품 발송이 안돼 재차 판매 사이트를 살펴보니 ‘물품 발송 문자는 자동으로 나가는 것으로 실제 발송 여부와 무관하다’고 적혀 있었다.

11번가는 판매자들이 실제 발송이 아닌 허위문자를 보내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만 ㄱ씨가 신고하기 전까지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 11번가 관계자는 “판매자들이 정해진 양식 이외에 자체적으로 그림파일 등의 형식으로 만들어 올리는 판매조건의 경우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어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최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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